수없이 많은 카페가 생겨났다 사라지는 요즘. 다시 찾고 싶은 카페란 어떤 카페일까 생각해 보았다. 자주 가기 위해서는 나의 활동 반경과 가까운 `입지`가 중요했다. 또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가격에 맛도 좋은 `제품력`이 중요했다. 이왕이면 브랜드를 잘 나타내는 인테리어가 담긴 `공간`도 사람들이 다시금 방문하게 하는 주요소였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이런 요소를 갖춘 훌륭한 카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이것만으로 되지 않았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매력 있는 카페가 되기 위해서는 이를 뛰어넘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고객과 눈높이를 맞추며 정성껏 좋은 음료를 제공하려는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그런 곳이 어디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카페 진정성`이 떠올랐다. 김정온 진정성 대표는 원래 서울 화곡동에서 다른 이름의 카페를 운영했다. 바닐라빈을 한 달 이상 숙성해 시럽을 만드는 등 모든 재료에 정성을 담아 팔았지만, 장사가 안 돼서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권리금도 없이 나왔어야 했는데, 그런 제게 딱 하나 남은 것이 있었어요. 저희 제품이 좋다고,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해보라고 격려해주셨던 단골손님들이에요."
단골들의 응원에 힘입어 김 대표는 월세가 3분의 1가량 저렴한 김포에 자리를 잡았다. 좀 더 직관적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상호도 `카페 진정성`으로 변경했다. "이 카페는 진짜 재료 그대로를 사용해 맛있게 담아내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좋은 재료를 손이 많이 가더라도 정성껏 제조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많은 분들이 저희 주력 상품을 밀크티로 아시지만, 초기 효자 상품은 커피예요. 그중에도 바닐라라테였지요. 시럽을 끓인 후 바닐라빈을 갈아 넣고 숙성시키면 바닐라빈 시럽이 완성되는데 이시럽을 담뿍 넣은 바닐라라테가 정말 잘 팔렸어요. 가열하지 않아 원재료가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향이 살아났거든요. 손님들이 그것을 알아주시고 좋아해주셨죠."
그렇게 커피가 잘 팔리자, 김 대표는 이 숙성 방법을 밀크티에도 적용했다. 가열해서 만든 밀크티가 아니라 냉침과 숙성으로 향을 살린 밀크티 또한 잘 팔리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신 손님들은 집에 돌아갈 때 밀크티를 한 병씩 사가기 시작했고, 매출도 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했다. 진정성에서 커피를 마시고 집에 갈 때면 꼭 밀크티를 한 병씩 사 가곤 했으니.
그렇게 장사는 잘되었고 매장은 확장했다. "잘되는데, 운영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물이 넘치고, 배수구가 넘치고. 앉을 자리도 비좁아 손님들이 불편해하시고. 소나기가 오던 어느 날이었어요. 밖을 보는데 매장이 좁아 테이크아웃해서 드시던 손님이 비를 맞고 계시더라고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확장하기로 결심했지요."
김 대표는 김포에서 추가로 매장을 오픈했고 서울 도곡점, 여의도점, 연희점을 오픈했다.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매장을 확장하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장사는 잘되었지만, 대량 판매가 이뤄지면서 진정성을 시작했을 때의 핵심이 잊히기 시작한 것이었죠. 진심으로 정성껏 만든 제품을 전하고자 했는데, 매장을 확장하는 가운데 그런 마음이 과거처럼 손님에게 전달되지 않았어요."
김 대표는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음식이나 음료는 유행이 있어요. 밀크티도 마찬가지였죠. 밀크티 붐이 지나가면서, 매출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유행이 사그라들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튼튼해야 해요. 어려운 시기에도 원조집은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결심했지요. 저희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온전히 보여주기 어려운 매장은 정리하고, 새로운 매장인 김포 서점을 오픈하기로 했어요."
김 대표는 그가 왜 일부 매장을 정리하고, 김포에 서점을 새로 오픈하게 됐는지 담담하게 설명해주었다. 처음 김포에서 진정성을 시작했던 때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서점을 오픈했다는 이야기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대박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공간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천천히 차근차근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곳, 서점(徐點)이었다. 토요일 오후 찾아간 서점은 강화도와 가까운 월곶면에 있었다.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이 넘게 달려간 곳. 문수산 근처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아담한 전시 공간 건물이 보였다. 진정성 서점이었다.
아직은 조금 자란 갈대밭을 지나 야외에 위치한 커피 부스로 향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아메리카노로 마실 수 있었다. 의자에 걸터앉아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니, 향긋한 과실 향 가득한 커피가 참 좋았다. 3500원의 호사였다.
서점의 공간은 크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야외 부스와 실내 다실로 이뤄져 있었다. 실내 다실은 두 가지 공간이 있는데, 티 코스를 중심으로 즐길 수 있는 예약 공간과 단품 위주로 즐길 수 있는 방문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티 코스를 즐길 수 있는 예약 공간으로 들어갔다. 한국 차 코스를 내어주었는데 입가심하고, 맑은 녹차를 마시고, 제분차를 마신 후 과일 블렌딩차로 마무리하는 코스였다. 중간중간 함께 나온 곁들임 다식은 차로 인해 속이 쓰리지 않도록 밸런스를 잘 잡아주었다.
전통 다실이 아닌 이곳은 `진정성만의 독특한 개성이 잘 녹아 있었다. 우수한 품질의 생두를 선별해 커피를 로스팅하고. 스리랑카에서 차를 수입해 밀크티를 만들던 김 대표의 경험이 오롯이 담긴 진정성스러운 다실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음료는 그의 방식으로 해석한 `제분차`였다. 일본에서 마시던 말차와 다르게 그는 제주 녹차를 일정한 온도와 습도 아래에서 덖어 줄기와 잎맥을 제외한 후 한 번 더 볶았다.
이렇게 볶은 차를 눈앞에서 천천히 맷돌에 갈아 제분했다. 제분한 가루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다크 로스팅, 다른 하나는 라이트 로스팅. 김 대표는 이 둘을 적절한 비율로 블렌딩 후 우유에 격불(차에 거품을 내는 행위)해 주었다.
이 한 잔의 제분차를 만들기 위해, 그는 커피를 로스팅할 때처럼 섬세하게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고, 우유와 섞었을 때 알맞은 맛을 찾기 위해 블렌딩하는 등 진정성만의 제분차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정성껏 제분차를 준비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말한 서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좋은 재료를 수고롭더라도 정성껏 담아 제공하는 모습을 천천히 보여주고 싶다"던 이야기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공간, 제품, 서비스가 모두 하나의 목소리로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듭니다"를 이야기하던 진정성 서점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치는 요즘이지만,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그리고 우리가 담는 정성을 찬찬히 바라봐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토요일 오후였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 열심히 다니며, `커통세(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를 씁니다."
※ 더 도어(The Door)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입니다.
[박지안 리테일 공간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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