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버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떠오르는 대사가 있다. “고니야, 먹고살기 참 힘들다.” 영화 <타짜>에서 배우 김혜수가 한 독백이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나는 펑크밴드에서 10년째 베이스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인디 음악가로서 밴드 활동을 통해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먹고살 만큼의 수익은 내지 못해 꾸준히 생업을 병행해왔다.
2008년 유명 프랜차이즈에 시간제 근무자로 입사해 지난해 퇴사할 당시 직책은 점장이었다. 처음부터 오랫동안 일할 마음으로 입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른 직업보다 비교적 근무시간의 자유로운 조율이 가능해 밴드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했다. 공연한 다음날 새벽에 출근하는 일도 많았고, 해외 공연을 다녀온 다음날에도 출근하는 생활이 자주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 김혜수의 대사를 아무리 떠올려도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게 되었고, 지난해 여름 정신과 의사의 권고로 퇴사했다.
10년 넘도록 고용보험료를 냈지만, 자발적 퇴사자라는 이유로 구직급여(실업급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신경쇠약을 이유로 병가로 퇴직 처리되긴 했지만, 급여 대상이 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구직급여는 말 그대로 취업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보니 병으로 아픈 사람은 구직활동을 할 수가 없어 급여 대상이 아니다.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긴 시간 쉬지 않고 일을 해왔고, 정신적 회복을 위해서는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도 있었지만, 나는 급여 대상이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분류되는 대다수 예술가는 고용보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예술인을 위한 제도가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 정책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불안정한 수입으로 생활하는 예술인들의 현실을 반영하기에 현재의 정책은 무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노동인구의 48%에 그치고 있어 사각지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가입되지 않은 집단이 14%, 제도적으로 가입 자체가 배제된 집단이 38%라고 한다.
얼마 전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시럽급여’ 발언이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업급여를 받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문제라고 했고,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월급보다 실업급여의 하한액이 더 많다는 이유로 개편을 주장했다. 낮은 임금을 받고 힘들여 일하느니 쉬면서 실업급여를 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정의 추진 방향대로 실업급여의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60%로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것은 고용시장이 안정되지 않아 잦은 실직과 이직이 발생하는 책임을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주 4일 근무, 자발적인 퇴사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너무 꿈같은 생각이었나 싶다. 부디 사각지대 없이 모든 이들이 사람답게 살 권리가 보장되는 국가가 되기를, 많은 청년들이 살아가는 게 버겁지 않은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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